YaWA - 8 post
- 세계관 2015.09.01
- 2009.04.20 2015.08.31
- 백 동 경 2015.08.29
화 양 연 화
花 樣 年 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부모의 학대, 가정의 불화,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 또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
하나님, 왜 저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셨나요.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행복하게 웃고있는데.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어서,그저 행복해지고 싶어서 매일 밤 베개 끝자락을 눈물로 적셔내던,
칼날같이 시린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과거를 뒤로한
어린 청춘들의 아름다운 마지막 일탈.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어떠한 의무도 책임도 없이 노는 것 만이 주어진 일입니다.
7일 후 한날 한시에, 우리는 모두 눈을 감습니다.
그때,
엄마는 참 예쁜 사람이였다. 너무 예쁘지만 아무나 만질 수 있는 길가에 피어난 꽃 같은 존재였다.
그저 오고 가는 바람들에게 여린 몸을 내어주며 더럽다고 손가락질 받는 꽃, 그게 엄마의 삶이랬다.
꽃은 예쁘면 으레 꺾이기 마련이라는 것을 엄마는 알았을까. 그래도 누군가의 손에 꺾여, 다른 손길
들을 받지 않길 바랐던 걸까. 아빠, 라고 불러도 되나 싶은 남자는 사랑한다는 말로 꽃을 꺾어냈다.
꺾인 꽃은 시들어요, 그러니 다른 아름다운 꽃을 찾아가야지. 잔인하게도 평범하고 착실하게 자란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남자는, 나를 가진 엄마에게 청첩장을 건네며 그렇게 떠나갔다.
동경아, 엄마는 아빠가 너무나 그리워.
엄마, 그래서 내 이름이 동경이야?
엄마는 그럴 때마다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고 그저 웃어보였다. 착한 우리 엄마, 바보같은 우리 엄마.
단 한번도 남자를 원망하지 않은 채 엄마와 남자를 꼭 반반씩 빼닮은 내 이름만이 바래지도록 불렀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것 만큼 바보같은 짓은 없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만큼 큰 죄는 없다던가.
그렇게 빛이 바래가던 엄마는 결국 머릿속이 검게 물들어 버렸는지, 내가 졸업식을 하던 어느 겨울 날
소복하게 쌓이는 눈 처럼 흰 얼굴을 하고는 떠나가버렸다. 아주 영영.
형제도, 친척도 무엇하나 없는 나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외로이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기도 전에 가혹한 현실이 먼저 발등에 떨어졌다. 당장 몸뚱이를 뉘일 집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은
아직 엄마의 영정 사진 앞에 피워두었던 향내가 덕지덕지 묻은 기억들을 끌어안고 일어서게 만들었다.
꼴에 죽기는 싫었는지 악착같이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14살 어린애에게는 작은 동정 외에는
조금도 주어지지 않은 세상에서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동경아, 용돈 필요하지 않니?
여느때와 같이 일을 하는데 사장님이 물으셨다. 우리 착한 사장님. 미성년자는 고용 할 수 없다고 했었
나, 하는데도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일을 시켜주겠다고 하시더니 매일을 과자며 작은 선물 따위를 자상
하게 웃으며 챙겨주셨다. 바라지 않으려고 했던 내게도 가끔은 내게도 아빠가 있었으면 이렇지 않았
을까, 하는 작은 허상마저 들었다. 혹시 월급을 더 주시려 하는 건가 싶어 약간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사장님은 머리를 다정스레 쓸어주며, 가게문을 잠그셨다.
큰 돈이 생겼다. 구겨진 옷을 잡히는대로 끌어와 걸쳐 입으며 덩그러니 놓여있는 10 만원 짜리 수표 네
장을 꽈악 움켜쥐었다. 더럽게도. 다시 아버지같이 자상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주신다. 일주일에 두번,
오늘과 같이 수표 네장. 하루 10시간을 종일 일해야 겨우 받을 수 있던 나의 월급과 맞먹는 큰 돈이였다.
몇 번의 반항으로 인한 손찌검에 들리지 않게 된 왼쪽귀를 손으로 감싸며, 나는 떨구듯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많아졌는데 마음은 점점 더 가난해져갔다. 나를 판 돈으로 중학교 교복을 맞춰입고, 유행이라는 디자
인의 가방을 맸다. 잠시 접어두었던 학교를 무의미하게 다니기 시작했다. 행복해지자, 행복해지자. 매일을
주문처럼 외웠다. 제발 부탁이니 행복해지자.
중학교 3년 내내 친구라고는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늘 듣던 칭찬인, 동경이는 밝은 아이야. 하는 말
처럼 스스럼 없는 내 모습에 처음에는 꽤나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았던 것 같았는데. 언젠가 부터 엄마
와 나의 비밀 이야기가 학교에 돌기 시작하더니 선생님들은 나를 없는 아이 취급했고, 아이들은 내 책상 위에
국화꽃을 올려놓았다.
나는 더러우니까 멀리 떨어져서 다녀줘.
그 아이에게 몇번이고 나와 다니는 것을 그만두라고 부탁했었다. 너 조차도 경멸의 시선을 받는게 두려워, 난.
그래도 끝끝내 손을 내밀어 잡아주던 그 아이를 고마워하며 죄책감에 몸부침 치다가 결국 나는, 사랑했었다.
고등학교는 일부러 아주 먼 곳으로 왔다. 아무도 나를 몰라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였다. 일을 감추는 것도 제법
능숙해졌다. 가끔씩 얻어맞아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평범하게 학교 생활도 유지해냈다.
졸업을 마치면, 이 일을 그만두고 떳떳하게 살고싶었다. 행복하게 아프지 말고.
어느 날 부터 멍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그다지 생각이 많은 편은 아니였지만, 분명 정상인 것 같지는
않았다. 뭉글게 퍼지는 머릿속이 때로는 날카롭게 세워져 송곳 따위로 뇌를 온통 헤집는 듯한 고통이 일기도 했
다. 아무 이유 없이 진듯한 검붉은 코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엄마의 병이구나.
너무 많이 그리워 했나보다. 사랑하면 닮는다던데 사랑도, 인생도, 죽음마저도 나는 그렇게 엄마와 조금도 틀림
없이 같아졌다. 사랑했던 사람은 꼭 어울리는 멋진 사람을 만나 떠났고, 나는 여전히 혼자 남아 결국 머릿속을
검게 물들이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저 별 보러 갈게요.
단 한번의 제대로 된 치료나 항생제 따위는 쓰지 않았다. 아니, 않았다 보다는 못했다고 하자. 나로썬 도저히 그 비
싼 치료비를 감당할 어떠한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퇴서를 냈다. 의사가 악성 뇌종양이 말초신경을 어쩌고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문인지 눈 앞이 뿌옇게 흐려져
잘 보이지가 않았다. 손이 자꾸만 떨려 글씨를 쓰는데도 꽤나 애를 먹었다. 잘 알아봐 주시겠지. 그래도 친구 목소
리는 마지막으로 듣고 싶었는데. 귀도 벌써 말썽인걸까. 입만 벙긋거리지 말고 제발 한 마디만 해줘, 안녕이라고.
동경하다.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하다.
행복해지자,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그리 큰 욕심은 아니였던 것 같은데. 내게 주어진 것은 깜깜한 밤의 흐린
별빛이 고작이였나보다. 난간에 올라섰다. 그동안 별을 보러 올라왔을 때는 잘 몰랐었는데, 꽤나 높았구나.
새벽 3시의 밤공기는 제법 따듯한 것도 같았다. 마지막으로 행복하고 싶었던 세상을 둘러보려는데, 눈을 아
무리 깜빡여도 잘 보이지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주지. 쪽팔리게 눈물이 차올라 엄마도 불러보고, 그 애도
불러보고. 바보같이 한번 행복한 척 하면서 웃어도 보고. 행복한 척, 행복한 척. 진짜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그래서인지 허공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마저 눈물이 흘렀다.
죽어서도 동경할게.
백동경 2009년 4월 20일 낙화
백 동 경
" 나랑 별 보러 갈래? "
176 cmㅣ60kgㅣMaleㅣ18 yrs
반짝 반짝 흐린 별ㅣ행복하다?ㅣ아무 것이 아니여서 아무것도 아닌 말
지나가는 추억아
우리는 고요라는 그릇에 담긴 과거다
잃어버린 신발에 대해
남아있는 발이 황량한 빛깔로 굳어지는 일
멀리서부터 태양이 걸어온다
반짝이는 척하는 별들은 모두 떨어져야 한다
-웅크리다, 박현준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망설이며 대답을 못하고, 때로는 매몰찬 거절을
뱉어도 녀석은 그저 환한 미소를 지어주며 그 손을 잡아 끌었다. 제일 크고 예쁜 별 보여줄게.
별, 사랑하고 동경 하는 별은 흐리게 반짝였다. 물끄러미 올려다 보는 눈이 흐려서인가, 하늘
이 흐려서인가. 시선이 고정 된 곳은 크고 밝게 빛나는 별들이 아니였다. 그 주위에서 녀석처럼
미약하게 빛나는 것들. 녀석은 늘 그 작은 별들만을 오랜 시간 동안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러
자, 몇 억 광년이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아스라히 먼 별빛이 그 눈에 담겼다. 소년다움이 물씬
이게도 동그란 눈을 가진 녀석에게, 그다지도 좋아하는 별들이 온통 쏟아져 내렸다.
제법 마른 듯한 손가락을 하나 하나 접어 세었다. 오늘은… . 갑작스레 하던 말을 대충 얼버무
렸다. 하지만 언짢을 때면 왼쪽에만 깊게 패이는 볼우물과 기운 없어 보이는 얼굴이 소리를 대
신해 굳이 말을 하지않아도 충분히 짐작될 정도였다. 적당히 도톰한 입술을 창백해지도록 곱씹
는다. 으레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나오는 버릇이였다. 은은한 갈색이 도는 얇은 머리카락을 손
으로 마구 헤집어 흩트린다. 이내 새까만 눈동자마저 접히며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
던 혹자는 걱정스레, 가까이로 다가가 보지만. 오늘은…, 망고주스를 어제보다 하나 덜 마셨어.
곧 녀석을 버려두고 제 갈길을 가더라.
너는 네가 너를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 해? 녀석은 때때로, 평소와 다름 없이 웃으며 뜻모를
말들을 던졌다. 괜스레 동요를 불러 일으키는 말들을 뱉은 후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의아하기 짝이 없는 행동.
천진하기만 하던 모습은 입가에 걸린 웃음을 제외하면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냉소
는 아니였다. 이렇다할 악의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대답을 해오는 이들, 질문에 고개를 기울이는
이들을 뒤로하며. 녀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듯, 다만 눈을 감을 뿐이였다.
동경 (憧憬) 하다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하다.
별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대.
흐리다
시력이 많이 좋지 않아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의 얼굴만 구분할 수 있는 정도.
먹먹하다
왼쪽 귀가 들리지 않지만
듣는데에 지장은 없어 신경쓰지 않는다.
2009.04.20
그 때
노류장화ㅣ홀로서기ㅣ행복해지기
결국
검게 물들다ㅣ암전ㅣ낙화